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 (문단 편집) == 배경 == 1963년 아스카타 이치오(飛鳥田一雄) 요코하마 시장이 당선될 당시 요코하마는 [[간토 대지진]], [[태평양 전쟁]], [[연합군 최고사령부]] 점령에 따른 도심부 강제 수용 및 인구 증가로 인한 [[스프롤 현상]]이 요코하마시의 가장 큰 문제였다.[* 현재도 요코하마시는 [[도카이도 본선]]이 지나는 원도심 및 중, 남부와 [[도큐 덴엔토시선]]이 지나는 북부가 거의 단절되어, 중간의 [[도카이도 신칸센]] 경유 지역은 논밭이 펼쳐져 있는 양분화된 도시 구조를 보이고 있다. 또한 원도심에 해당하는 간나이 일대가 연합군 최고사령부 점령으로 쇠퇴하고 [[요코하마역]] 일대가 발전하는 변화도 있었다.]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65년에 <요코하마시 6대 사업>이 제안되었고, 그 중 하나로 도심부 강화를 위해 [[미쓰비시 중공업]] 요코하마 조선소와 일부 부두들이 있는 곳을 재정비하여 요코하마의 도심부를 일체화하는 <도심부 강화 사업>이 계획되었다. 이 계획은 오일 쇼크 등으로 실행되지 못하다가 1979년 사이고 미치카즈(細郷道一) 당시 요코하마 시장에 의해 <요코하마 도심 임해부 종합 정비 계획>으로 발표되었고, 미쓰비시 중공업 요코하마 조선소의 이전이 완료된 1983년에 이르러서야 <미나토미라이21 사업>이라는 이름으로 착공되었다. 당초 계획은 2000년 전후에 개발을 완료하는 것이었으나, 버블 붕괴로 인한 극심한 경기 침체와 교통망 정비 지연[* 지구를 관통하는 [[미나토미라이선]]은 노선계획을 둘러싼 대립과 [[요코하마역]] 지하 공사 지연으로 2004년에야 개통했다.]으로 초기 건설된 [[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]]와 [[퍼시피코 요코하마]]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입지가 공터로 남아 있었다.[* 2006~2016년 사이에는 닛산자동차 본사 인근에 계열 축구 클럽 [[요코하마 F. 마리노스]]가 훈련장을 차리기도 하였다. 연간 3천만엔 정도로 싸게 빌릴 수 있었기 때문.] 이후 2000년대 들어와 다시금 요코하마시가 기업 유치에 나서면서 슬슬 도시같은 구색을 갖추기 시작하여 [[신타카시마역]] 부근을 제외하면 대부분 건물이 들어찼다. 2025년 정도에는 90% 정도는 개발을 완료할 것으로 보인다. 전체 면적은 1.86㎢이며 이 중 0.76㎢는 매립지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